이정도면 미친거지

억지로 하는말 진심은


국민들로부터 선택받는 한손과 사민당. 이제 ‘총리’ 한손과 ‘재무부 장관’비그포르스로 본격적인 사회복지정책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사민당에 맞서 똘똘 뭉치는 반 사회주의 정당들(보수당. 자유당, 농민당) 복지정책을 위해 의회에 설치한 복지위원회에서 거꾸로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협의하고 수적 우위를 이용한 표결처리를 준비한다. 이에 한손은 협상을 시도하지만 사민당 경제정책의 핵심인 대규모 재정지출과 공공근로사업에서만큼은 어떠한 타협이나 양보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러자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내각해산설 시작조차 못하고 위기에 처한 ‘국민의 집’ 그때 한손이 내린 결단. 반 사회주의 정당의 가장 약한 고리인 농민당 끌어안기. 농민당 당수인 쿨렌베리스토르프를 제치고 비그포르스 경제이론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또다른 당내 권력자 베스트만을 따로 만난다. 한손의 대폭적인 양보속에서 조용히 체결되는 사민당-농민당 동맹. 이를 전혀 모르던 반사회주의 연합은 크게 당황하고 결국 복지위원회는 사민당-농민당의 주도하에 사민당의 복지프로그램을 처리하게 된다. 간신히 첫 고비를 넘긴 한손내각. 하지만 1920년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파업일수. 폐업에 항의하는 공장직원에게 군대가 발포하여 5명이 사망하는 등 해답이 보이지 않던 스웨덴의 노사갈등이 한손과 비그포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1933년 총파업에 들어간 건설노조. 파업이 해를 넘기면서 장기화되자 산업전반은 물론 사민당정권까지 위협하게 된다. 스웨덴의 길 3부 ‘사람 중심의 경제’ 파업을 저지하면 주요파트너인 노동계(LO)와 마찰을 빚게 되고 파업을 그대로 두면 직장페쇄라는 경영자협회(SAF)의 압박은 물론 (보수적 성향인) 농민당과의 연합도 위협받을 수 잇는 상황. 이러한 난관속에서 사민당이 내린 선택. 단순한 ‘중재’가 아닌 ‘경제현실 직시’ 수출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맞춰 산업전반의 합리적 조정이 시급했던 당시 스웨덴의 현실.